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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새로운 전선 - 먼슬리 리뷰 1호

· 저자/역자 :
필맥 MR 편집팀
· 장르 : 인문,인문
· ISBN : 978-89-91071-42-1
· 발간일 : 2007-05-10
· 페이지수 :
· 정가 : 10000 원
 
 
이 책은 ‘독립적 사회주의 잡지’로 명성이 높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에 최근 일 년여 동안 실린 글들 가운데 일부를 엮은 것으로, <먼슬리 리뷰>의 한국어판이다. 필맥 출판사는 미국에서 월간으로 발행되는 <먼슬리 리뷰>에 실리는 글 가운데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가려내어 일 년에 두 번 정도씩 무크지 형태의 편역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권인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등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활동이나 정책을 비판적으로 살펴본 글들이 앞부분에 배치됐다. 이 밖에 오늘날 중국 노동계급의 상황, 정보기술 사회에서의 직업정체성 문제, 여성운동의 현주소와 과제, 신자유주의의 신화와 현실 등에 관한 글도 들어 있다.


<먼슬리 리뷰>에 대해


<먼슬리 리뷰>는 미국 뉴욕에서 1년에 11번(여름에 7~8월 합본호를 낸다) 발행되는 월간지로,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이념적 바탕으로 하는 좌파 잡지다. 그러나 이 월간지는 좌파 잡지이긴 해도 역사에 존재했거나 오늘의 현실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좌파의 운동세력이나 정치세력과도 선을 긋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켜오고 있다. 이런 독립성 덕분에 이 잡지에 실리는 글들은 좌파뿐 아니라 우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객관적인 관점을 다듬는 데 유용한 읽을거리가 된다.


<먼슬리 리뷰>는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였던 폴 스위지가 1949년 5월에 창간했다. 창간호는 특히 두 가지 점에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글 ‘왜 사회주의인가?’가 대표글로 실린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글에서 “사회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교육제도를 갖춘 사회주의 경제를 수립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해악을 제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을 밝혔다. 또 하나는 흔히 ‘빨갱이 소동’ 또는 ‘매카시즘’으로 불리는 현대판 마녀사냥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는 시점에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다는 것이었다. 스위지를 비롯한 <먼슬리 리뷰>의 편집진은 공산당 앞잡이로 몰려 검찰의 소환조사를 당하는 등 여러 해에 걸쳐 미국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및 의사표현의 권리를 내세워 정부의 탄압에 당당하게 맞선 끝에 <먼슬리 리뷰>를 지켜냈다.


그 뒤 지금까지 거의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먼슬리 리뷰>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좌파 지식인이나 활동가들이 세계의 현안들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사랑방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 지면에서는 전쟁과 평화, 냉전체제, 미국의 패권주의, 여성문제, 환경, 자본주의의 변화, 국제경제의 구조, 문화적 흐름 등 인간의 삶과 복리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문제가 분석되고 토론돼 왔다. 그것은 현실에서 자본과 시장이 휘두르는 권력의 이면에 은폐된 각종의 해악과 모순을 폭로하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는 대안의 길을 찾는 노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먼슬리 리뷰>의 편집진에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먼슬리 리뷰>의 설립자로 오랜 세월 이 잡지를 이끌어오던 폴 스위지가 2004년 2월에 94세를 일기로 사망한 데 이어 1969년부터 40년 가까이 이 잡지의 기획과 편집을 지도해온 해리 매그도프도 2006년 1월에 역시 92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먼슬리 리뷰>의 편집은 그 다음 세대의 몫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지금은 미국 오리건 대학 교수로 생태사회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인 존 벨러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가 이 잡지의 편집을 이끌고 있다.

<먼슬리 리뷰>의 한국어판 제1권인 이 책은 ‘제국의 새로운 전선’이라는 표제 아래 미국의 제국적 세계전략의 새로운 흐름을 알게 해주는 글들을 앞부분에 배치했다. ‘미국이 인도의 강대국 야망을 부추기는 이유’, ‘미국의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 ‘석유중독국 미국의 새로운 전선’ 등 세 개의 글이 그것이다. 각각 인도 정치경제연구소(RUPE), 존 벨러미 포스터, 마이클 와츠가 쓴 이들 글은 미국의 외교정책과 세계전략이 최근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세계에 어떤 영향을 초래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인도대륙과 아프리카대륙에서 미국의 세계전략이 어떻게 구현되며 작용하고 있는지가 초점이다.


그 다음에 실린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에서는 필자인 사미르 아민이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론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미래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는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의 세계적인 확산과 이에 따라 초래되는 ‘직업정체성’의 붕괴가 인간의 노동과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살펴본 글이다. 이 글은 한국에서 사회적 현안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나 일자리의 해외이전 현상을 어떻게 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오늘날 중국 노동계급의 상황’이라는 글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화한지 30년이 넘은 오늘날 중국 노동계급의 삶이 어떠한지를 들여다본 글이다. 자본주의화가 급진전되고 그에 따라 도시와 농촌 간, 부자와 빈자 간,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앞날을 전망하려면 중국 노동계급의 현황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여성과 계급: 지난 40년 간 무슨 일이 일어났나’는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전개돼온 여성운동을 되돌아보고 오늘날 여성의 삶이 어떠한지를 살핀 뒤에 앞으로 여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본 글이다. ‘신자유주의, 그 신화와 현실’에서 필자는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입증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결함이 많다고 비판하고,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만 근거해 경제정책과 무역정책을 수립해 실시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책 뒷부분의 ‘먼슬리 리뷰 플러스’ 섹션에는 <먼슬리 리뷰>와 그 웹진(MRzine)에 최근 게재된 글 중에서 짧지만 눈에 띄는 것들을 모아놓았다. 여기에는 헬렌 켈러의 스승 애니 설리번을 조명한 시집 《애니 설리번 보기》(2005년 발간)에 대한 서평, 영화 <행복을 찾아서>(2006년 개봉)에 대한 평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글, 자본주의의 흔들운동에 대한 촌평 등을 담았다. 맨 마지막에 실린 아인슈타인의 ‘왜 사회주의인가?’는 반세기도 더 전인 1949년에 발간된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게재됐던 것이지만, 지금 읽어봐도 그 현실적 의미가 생동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글에서 “사회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교육제도를 갖춘 사회주의 경제를 수립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해악을 제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을 밝혔다.


필맥 MR편집팀_<먼슬리 리뷰>의 한국어판을 내기 위한 학자, 활동가, 번역자, 편집자, 논평가의 모임. 자발적인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추가적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편집팀의 머리말


먼슬리리뷰 Main
미국이 인도의 ‘강대국 야망’을 부추기는 이유 / 인도 정치경제연구소
미국의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 / 존 벨러미 포스터
석유중독국 미국의 새로운 전선 / 마이클 와츠


먼슬리리뷰 Side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 / 사미르 아민
미래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 어슐러 휴스
신자유주의, 그 신화와 현실 / 마틴 하트-랜즈버그
오늘날 중국 노동계급의 상황 / 로버트 웨일
여성과 계급: 지난 40년 간 무슨 일이 일어났나 / 스테파니 루스, 마크 브레너


먼슬리 리뷰 Plus
켈러의 선생님 설리번을 느껴본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보고
식량을 연료로 돌린다는 발상에 대해
자본주의의 세 가지 흔들운동과 오늘날의 미국
아인슈타인의 ‘왜 사회주의인가?’

미국은 2002년 9월에 공개한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미국의 지구적 헤게모니에 대해서는 물론 지역적 헤게모니에 대해서도 경쟁세력의 등장을 전 세계 어디에서도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미국은 이런 자국의 과제들을 실현하는 데서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미국은 동맹국들 내부에 ‘미국의 비호 아래 우리나라를 강대국 지위에 오르게 하겠다’는 꿈을 품는 자들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인도의 ‘강대국 야망’을 부추기는 이유‘에서)


미국의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의 목표는 이런 전례 없는 군사적 힘을 이용해 모든 대륙을 다 포함하는 광대한 영역에 걸쳐 전면적인 지배권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수십 년 간 그 어떤 잠재적 경쟁세력도 미국에 도전할 수 없게 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세력의 부상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 특히 미국 자본주의의 확장을 위해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 민중을 대상으로 미국이 벌이는 일종의 전쟁이다. (‘미국의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에서)


과거에는 제국주의가 복수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서로 영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과두적 자본집중의 심화는 이제 삼극동맹(三極同盟)이라는 집단적 제국주의의 등장을 낳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삼극동맹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 체제로부터 자기들이 얻는 이익에 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이 체제에 대해 통합적인 정치적 관리를 하려는 시도는 복수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현실과 충돌한다.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에서)


1997~98년의 동아시아 위기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와 같은 주역급 국가들을 파탄시킨 데서 보듯이 동아시아마저도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내재된 불안정성에 휘둘렸다. 대부분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재빠르게 이들 나라와 거리를 두었고, 이제는 새로운 챔피언인 중국을 열렬히 끌어안고 있다. (‘신자유주의, 그 신화와 현실’에서)


오늘날에는 국유기업에서 일하던 공산당 기간당원들조차도 자기가 소속된 국유기업을 사적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작업을 거들고 나서는 그 기업에서 내쫓기고 있다. 국유기업을 사들여 새로 소유주가 된 자본가들은 그들을 기업 안에 그대로 놔두지 않고 쫓아낸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한 노동자는 “방금 건넌 다리를 불태우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기업에서 쫓겨난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실업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그들의 의식이 고양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애니 설리번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을 소유하고 맛을 분간하는 혓바닥의 맛봉오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결핍의 세계다. 그것은 구빈원의 시체보관실처럼 창이 없는 ‘지하감옥’이다. 이런 결핍이 채워지고, 설리번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정하고 배부르고 행복하게 되기 전에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설리번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켈러의 선생님 설리번을 느껴본다’에서)


지금 미국은 또 한 번의 위기이자 이행기인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35년 간에 걸친 뉴딜정책의 후퇴는 사적 자본주의를 복원시키고 새롭게 했다. 공화당이 민주당을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았고, 민주당 안에서는 반 복지국가 분파가 친 복지국가 분파를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았다. 또 신고전파와 신자유주의의 경제이론들이 학교에서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물리치고 경제문제에 대한 ‘상식’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미국의 사적 자본주의는 2000년 초 이래 주식시장 거품의 붕괴를 겪었고, 그에 따른 영향이 아직도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제는 부동산 거품이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골치 아픈 결과들을 빚어내려고 한다. 새로운 금융수단들이 점점 더 모호하게 중층적으로 생겨나면서 갈수록 더 불투명해지는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세 가지 흔들운동과 오늘날의 미국’에서)


내가 보기에 이런 개인의 불구화가 자본주의의 최대 해악이다. 우리의 교육제도 전체가 바로 이 해악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들이 반복식 주입교육을 통해 지나치게 경쟁적인 태도를 갖도록 가르쳐지고, 미래의 직업을 위한 준비의 하나로 탐욕적 성공을 숭배하도록 훈련된다. 이런 심각한 해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 길은 사회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교육제도를 갖춘 사회주의 경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왜 사회주의인가?’’에서)